세상이 불공평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누구는 배터져 웃고 누구는 배곯아 죽는 역비례 현상이 여전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칭적 구도를 탓하기에 앞서 동서고금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빈부의 격차는 계속돼 왔다. 경제 규모가 크면 클수록, 작으면 작은대로 양지와 음지는 뚜렷이 구분된다.

분기 영업이익이 2조니 1조하는 삼성과 LG의 배터지는 탄성에 피골이 상접한 대다수 중소기업의 신음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그래도 다같이 못 사는 사회주의와는 달리 빈부의 격차 속에 잘나가는 선진기업 덕에 어둠의 기업들도 덩달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미국발 금융대란과 실물타격으로 전세계 섬유 경기도 얼어붙었다. 크게 횡재는 못해도 비교적 기복이 작은 우리 섬유수출도 8개월째두 자릿수 감소를 보였다. 소비성 수요도 그렇지만 수출용 원자재까지 포함해 섬유수입 역시 9개월 연속 감소폭을 보여 불황터널이얼마나 깊고 긴 것인지 실감이 간다.

규모 경쟁으로 승부건 초대형 밴더들

올 상반기 섬유수출 실적을 보면 54억 5600만달러에 머물러 작년보다 19.3%나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연말까지 겨우100억달러를 턱걸이해 지난 90년대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것 같다. 우리보다 시장규모가 16배나 더 큰 미국시장이침체되면서 전세계를 강타한 쓰나미의 연쇄반응이다.
그러나 국내 섬유 수출입은 8~9개월째 두 자릿수 감소를 보인 반면 해외에 진출한 대형밴더들은 불황을 모르고 일취월장하는 양극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본지가 세계 최대 니트의류 ‘빅3’를 포함해 아웃도어 분야 세계 1등 기업 영원무역을 비롯한 최상위 의류수출 그룹을 조사한 결과이들 기업은 지금이 불황이 아니라 오히려 호황임을 실감케했다. 국내 섬유수출 기업마다 극심한 오더 가뭄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있는데 반해 해외진출 대형밴더들은 오히려 일취월장 고도성장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대 니트의류 수출업체인 세아상역은 작년에 8억달러 남짓 수출한데 이어 올해는 10억달러 문턱인 9억 9000만달러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목표가 아니라 현재 확보하고 있는 오더 수주 규모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저력을 바탕으로 세계 5개국에 300개 라인 2만 5000면을 고용하고 있는 대규모 소싱기지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주력 생산기지인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니트의류 ‘빅3’ 중 2위인 한세실업도 세아를 바짝 추격하면서 작년에 6억달러 남짓 수출에서 올해 7억 2000만달러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역시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 중남미에 산재한 대규모 소싱기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작년에 파생상품 키코에 걸려 혼줄이 난 한세실업은 올해부터 수렁에서 벗어나 선두 세아를 추격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니트의류 ‘빅3’의 한솔섬유도 3년전 미국의 주거래선 한 곳으로부터 거래가 축소돼 타격을 입었지만, 작년부터 재도약에 성공해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빅3’ 중 베트남에 가장 먼저 들어가 둥지를 튼 한솔섬유는 거의 5000만달러를 투입해 건립한편직ㆍ염색ㆍ봉제의 일괄시스템인 버티칼 공장을 완공해 5월부터 풀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주력시장인 미국 뿐 아니라 작년부터 새로 개척한 일본 유니클로와 거래량을 확대해 일본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동남아ㆍ중남미 등 8개국의 생산공장을 풀가동해도 오더를 다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트의류 ‘빅3’와는 별도로 세계 1위 아웃도어 메이커인 영원무역은 세계 최대 규모인 3만 5000명 규모의 방글라데시 공장과종업원 1만명 규모의 중국 청도공장에 이어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종업원 1만 1000명 규모의 공장을 신설해 본격 가동하고있다. 특기할 것은 아웃도어 뿐 아니라 니트의류 분야에도 참여해 베트남 공장에 대형 편직 설비를 갖춰 가동중이며 곧 매머드염색공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노스페이스를 포함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 아웃도어 수출로 6억달러 이상 돌파할 것으로 보여진다.

신원은 과테말라와 인도네시아ㆍ중국공장에 이은 베트남 하노이 공장에 니트봉제 라인을 대폭 증설해 최근 60개 라인을 가동하고 있고개성공단의 신화를 창조한 저력을 바탕으로 종업원 3000명 규모의 새공장을 9월부터 가동한다. 수출과 내수가 거의 비슷한 규모인신원은 올해 수출에서만 2억 2000만달러 규모를 낙관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해외공장 투자에 올인하고 있는 팬코의 설비확장은 놀랄 정도다. 대일의류수출 1위 기업인 팬코 역시 3000명규모의 중국 청도공장 인근 평도에 편직ㆍ염색ㆍ봉제에 이르는 매머드 버티칼 공장을 작년에 가동한 데 이어 베트남 공장에 대규모투자를 확대해 이달 말 준공한다.
호치민 인근의 팬코공장 역시 종업원 5000명 규모의 니트봉제 라인에 이어 최신형 편직기와 염색설비를 완비하고 본격 가동을 서둘고 있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서 팬코의 수출규모도 연간 2억 5000만달러 규모로 늘어난다.
이같이 글로벌 의류기업들의 지속적인 수직상승을 보면 얼핏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세계적인 불황에 모두가 신음하는데 어떻게 이들 초대형 밴더들은 오히려 고공행진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일까?

더구나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주력시장인 미국의 대형 스토아와 백화점 바이어들은 올들어 가격을 20~30%까지 깎았다. 미국 경기의 불황 여파로 크고 작은 바이어 모두가 수입단가를 몰인정하게 후려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초대형 밴더들의 수직상승은 과감한 규모 경쟁으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가격이 깎이면 깎인 만큼 초대형 공장의 생산성으로 카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품질과 사후관리 서비스는 회장이 직접 컨트롤해 공신력을 확보한 것이다.
더욱 큰 전략은 불황일수록 고급품 수요는 줄거나 한계를 보이지만 중ㆍ저가 대중용 수요는 늘어난다는 평범한 시장흐름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불황에도 품질을 전제로 한 규모 경쟁의 과녁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이 적중한 것이다.
과감한 설비투자로 규모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 글로벌 기업들과 10년 이상 투자하지 않고 불황 타령을 일삼는 대다수 국내섬유기업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는 새가슴 섬유기업인들이 늦었지만 깊이 고민할때다.
                                                                                                                 <조영일 칼럼, 국제섬유신문 발행인>